
들어가며: 로또에 당첨된 나라
어느 날 마당에서 유전이 터졌다고 해 봅시다.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수출로 달러가 밀려들고, 정부 금고가 두둑해지고, 국민 소득이 뛰어오릅니다. 상식적으로 이보다 좋은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동안 자원 부국들의 성적표를 모아 보면 이상한 결과가 나옵니다. 석유와 광물이 풍부한 나라들의 평균 성장률이,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나라들보다 오히려 낮았던 것입니다. 일본, 한국, 스위스, 싱가포르는 땅에서 나오는 것이 거의 없는 나라들이고,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는 세계적 산유국입니다.
이 역설에 이름을 붙인 것이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입니다. 커다란 자원 소득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그 나라의 제조업이 무너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1977년 이코노미스트지가 처음 쓴 표현이며, 병에 걸린 환자는 1959년 북해 천연가스를 발견한 네덜란드였습니다.
1. 환자의 진료 기록
네덜란드는 1959년 흐로닝언에서 유럽 최대급 천연가스전을 발견했습니다. 1960년대 내내 가스 수출은 늘었고 국고는 넘쳤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가스 수출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네덜란드의 제조업 고용은 줄고, 공장은 문을 닫고, 실업률은 올라갔습니다. 국민 소득은 늘었는데 산업 기반은 얇아졌습니다. 축복이 들어온 자리에서 다른 무엇인가가 밀려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정책 실패나 부패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네덜란드는 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국이었습니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결과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병이 무서운 것입니다.
2. 두 개의 경로
경제학자 코든과 니어리는 1982년 이 현상을 두 갈래 경로로 정리했습니다. 이해를 위해 한 나라의 산업을 세 부문으로 나눕니다. 자원을 캐는 붐 부문, 자동차와 반도체처럼 외국과 경쟁하는 제조업 부문, 그리고 미용실과 건설처럼 수출입이 어려운 비교역 부문입니다.
첫 번째 경로는 지출효과입니다. 자원 수출로 달러가 대량으로 들어오면 자국 통화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 기업이 받는 원화 대금은 줄고, 해외 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표는 비싸집니다. 같은 물건을 같은 품질로 만들어도 경쟁력이 사라집니다. 동시에 늘어난 소득이 국내 서비스와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임금과 임대료도 함께 오릅니다. 제조업은 매출은 압박받고 비용은 오르는 이중고에 놓입니다.
두 번째 경로는 자원이동효과입니다. 자원 부문은 수익성이 압도적으로 높으므로 인력과 자본을 빨아들입니다. 우수한 엔지니어와 투자금이 유전과 광산으로 몰려가고, 제조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워집니다. 남은 인재를 붙잡으려면 더 높은 임금을 줘야 하는데, 그럴수록 원가는 올라갑니다.
두 경로의 결론은 같습니다. 제조업이 국제 시장에서 밀려납니다.
3. 왜 제조업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인가
여기서 반문이 가능합니다. 시장이 더 수익성 높은 곳으로 자원을 옮긴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비교우위 아닌가. 가스를 팔아 번 돈으로 자동차를 사 오면 되지 않는가.
원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세 가지 이유에서 위험합니다.
첫째, 학습효과입니다. 제조업은 만들면서 배우는 산업입니다. 생산 경험이 쌓일수록 불량률이 떨어지고 공정이 개선되며 숙련이 축적됩니다. 이 학습은 대개 기업 안에 갇히지 않고 협력업체와 인력 이동을 통해 사회 전체로 퍼집니다. 자원 채굴에는 이런 파급이 훨씬 적습니다.
둘째, 비가역성입니다. 한번 무너진 산업 생태계는 되살리기가 어렵습니다. 부품 공급망이 흩어지고 숙련공이 은퇴하면, 나중에 자원 가격이 떨어져 다시 제조업이 필요해졌을 때 되돌릴 수 없습니다. 자원 가격은 반드시 등락하지만 산업 기반은 한 방향으로만 무너집니다.
셋째, 변동성입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은 극심하게 요동칩니다. 유가는 몇 년 사이 세 배가 되기도 하고 3분의 1이 되기도 합니다. 나라 살림 전체가 이 그래프에 묶이면 예산도, 환율도, 고용도 함께 흔들립니다. 그 사이 완충 역할을 해 줄 제조업은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4. 자원의 저주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 둘은 자주 섞여 쓰이지만 층위가 다릅니다.
네덜란드병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기제입니다. 환율과 요소 이동이라는 시장 메커니즘이 만들어 낸 결과이며,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원의 저주는 더 넓은 개념으로, 정치와 제도의 부패까지 포함합니다. 땅에서 나오는 소득은 국민에게 세금을 걷지 않아도 되는 돈입니다. 세금을 걷지 않는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를 덜 느낍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명제를 뒤집으면, 과세 없이 대표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유전이나 광산은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 장악하기 쉽기 때문에,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최고의 사업이 됩니다. 앞서 다룬 지대추구가 국가 규모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네덜란드병은 시장이 정상 작동해도 걸리는 병이고, 자원의 저주는 여기에 제도의 부패가 겹칠 때 나타나는 중증 합병증입니다.
5. 병에 걸리지 않은 나라들
자원이 많으면서도 성공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처방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노르웨이는 1969년 북해 유전을 발견한 뒤 석유 수입을 국내에서 쓰지 않고 국외 자산에 투자하는 국부펀드를 만들었습니다.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으니 환율 상승 압력이 차단됩니다. 재정준칙에 따라 매년 기금 원금이 아닌 실질 기대수익 범위 안에서만 꺼내 쓰며, 그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갖게 되었습니다.
칠레는 구리 가격이 장기 평균을 웃돌면 초과 수입을 기금에 적립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그 기금으로 재정을 지탱하는 구조화된 재정수지 규칙을 운영했습니다. 정치인의 의지가 아니라 규칙이 저축을 강제한 것이 핵심입니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수입을 교육과 인프라에 투자하며 아프리카에서 드문 장기 고성장을 이뤘습니다.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자원 소득을 국내로 한꺼번에 들여오지 않을 것, 저축과 지출의 비율을 사람이 아니라 규칙으로 정할 것, 꺼내 쓰는 돈은 소비가 아니라 인적자본과 산업 역량에 넣을 것입니다.
6. 자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네덜란드병의 논리는 땅속 자원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손쉽게 들어오는 큰 외화는 무엇이든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규모 해외 원조, 급증한 해외 송금, 관광 수입의 폭발적 증가, 특정 자산으로만 쏠린 외국인 자금이 모두 후보입니다. 모두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자원을 한쪽으로 끌어당깁니다.
개인의 삶에도 같은 구조가 있습니다. 한 가지 손쉬운 수입원이 생기면 다른 능력을 키울 이유가 사라지고, 그 수입원이 끊기는 순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수익원이 실은 다른 근육이 자라지 않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만합니다.
마무리: 축복을 관리하는 기술
네덜란드병이 알려 주는 것은 자원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큰돈이 갑자기 들어오는 일 자체가 관리해야 할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노르웨이와 베네수엘라는 같은 것을 발견했지만 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매장량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떤 규칙 아래 다루기로 정했는가였습니다. 자원은 기회일 뿐이며, 기회를 자산으로 바꾸는 것은 언제나 제도의 몫입니다.
핵심 요약
- 네덜란드병은 대규모 자원 소득이 유입되면서 통화가치 상승과 비용 상승을 통해 오히려 그 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이 무너지는 현상이다.
- 경로는 두 가지다. 달러 유입이 환율을 올리고 국내 물가와 임금을 밀어 올리는 지출효과, 인력과 자본이 고수익 자원 부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원이동효과다.
- 제조업 상실이 치명적인 이유는 학습효과의 파급, 한번 무너지면 되살리기 어려운 비가역성, 그리고 원자재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 때문이다.
- 네덜란드병은 시장이 정상 작동해도 걸리는 경제적 기제이고, 자원의 저주는 여기에 조세 없는 국가와 지대추구라는 제도 부패가 겹친 합병증이다.
- 노르웨이와 칠레의 처방은 같다. 자원 소득을 국내에 한꺼번에 풀지 말고, 저축 비율을 정치가 아닌 규칙으로 정하고, 쓰는 돈은 소비가 아니라 사람과 산업 역량에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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