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상식

물가와 실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필립스 곡선 (Phillips Curve)

반응형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가 오르는, 두 지표 사이의 맞교환 관계

1. 필립스 곡선이란 무엇인가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는 오르고, 반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면 물가는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두 지표가 시소처럼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이 올라가는 맞교환(trade-off)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개념은 1958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가 약 100년치 영국 자료를 분석하면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는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을 점으로 찍어 보니 우하향하는 곡선이 그려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학자들이 임금 대신 물가상승률을 넣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필립스 곡선이 완성되었습니다.

2. 왜 이런 관계가 나타나는가

경기가 좋아 기업들이 활발하게 생산하면 사람을 많이 뽑습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니 기업은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해야 하고, 실업률은 낮아집니다. 오른 인건비는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되어 물가를 밀어 올립니다. 또한 일자리가 늘어 소득이 많아진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면 수요가 커져 물가가 더 오릅니다.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은 사람을 줄이고, 실업률이 오릅니다.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고, 소비도 위축됩니다. 수요가 줄면서 물가 상승 압력도 약해집니다. 이렇게 실업과 물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3. 정책 담당자에게 주는 의미

필립스 곡선이 처음 주목받은 이유는 정부와 중앙은행에게 하나의 '메뉴판'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업을 줄이고 싶다면 물가가 좀 오르는 것을 감수하고 경기를 부양하면 되고, 물가를 잡고 싶다면 실업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 긴축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정책 담당자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중 어느 조합을 선택할지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1960년대에는 많은 나라가 실제로 이 곡선을 믿고 적당한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며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4.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반례

그런데 1970년대에 필립스 곡선을 정면으로 뒤집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물가가 오르는데도 실업률이 함께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한 것입니다. 오일쇼크로 원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경기는 침체되어 실업은 늘어나는데 비용 상승으로 물가까지 뛰는 최악의 조합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필립스 곡선이 늘 성립하는 절대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물가와 실업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전제 자체가 특정 상황에서만 통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5. 기대가 곡선을 움직인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에드먼드 펠프스는 그 이유를 '기대'에서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노동자는 미리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미리 가격을 올립니다. 그 결과 실업률을 낮추지 않아도 물가가 오르게 됩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실업률을 억지로 낮추려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만 효과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물가만 계속 오르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필립스 곡선은 우하향하는 곡선이 아니라 특정 실업률 수준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형태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실업률을 '자연실업률'이라고 부릅니다. 즉 장기적으로는 물가와 실업의 맞교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핵심 요약

필립스 곡선은 물가와 실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어렵다는, 경제 정책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실업을 줄이려 경기를 부양하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으려 긴축하면 실업이 늘어나는 긴장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곡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꿉니다. 단기적으로는 맞교환 관계가 나타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바뀌면 곡선 자체가 이동하고, 장기적으로는 그 관계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필립스 곡선이 주는 진짜 교훈은 "물가와 실업 사이에 공짜 점심은 없되, 그 대가의 크기는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반응형